오산일보

노년에 와서 깨닫는 감사

오경희기자 | 기사입력 2024/07/04 [11:30]

노년에 와서 깨닫는 감사

오경희기자 | 입력 : 2024/07/04 [11:30]

▲ 장석영 회장 현)대한언론인회 회장 한국문학신문 대표

덜컥 겁부터 났다. 나이가 들면서 처음 겪어보는 일이라 그랬다. 사실 그보다는 내가 자리에 누우면 와병 중인 아내는 누가 간병하느냐가 더 큰 걱정이었다. 저녁을 마치고 식탁 의자에서 일어나는데 갑자기 허리가 끊어지는 것처럼 아파져 왔다. 임시방편으로 옆에 있던 손자에게 허리 좀 주물러 달라고 하고 부축받아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누웠다.

 

처음엔 나이 들어 그렇거니 하며 한숨 자고 나면 괜찮겠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웬걸 다음 날 아침에는 침대에서조차 일어나기가 힘들었다. 간신이 목욕탕으로 들어가 양치질하려고 했으나 허리가 꼿꼿이 펴지질 않아 애를 먹었다. 세면대에 물을 받아 세수하려고 허리를 굽혔다가 통증에 그만 '악'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 바람에 손에 들었던 비누가 바닥에 떨어졌으나 허리를 굽혀 줍는다는 것은 엄두도 나지 않았다.

 

아침밥을 드는 둥, 마는 둥 하고 병원 문이 열릴 시간에 얼른 병원부터 찾았다. 의사는 “노년이 되면 운동 부족으로 찾아오는 근육통에 불과하니 약 먹고 쉬면 곧 괜찮아진다.”고 안심시킨다. 약국에서 약을 받아 들고 집에 와 다시 침대에 누워 별수 없이 하루를 빈둥거리며 보냈다.

 

그 사이 병원에서 처방해준 대로 약 먹고 거실에서 한 시간 정도 천천히 걷기운동을 했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요 며칠 동안 내가 생각해도 좀 무리를 한 것 같았다. 여기저기 모임에 불려 나가기도 했고, 시나 수필 청탁이 밀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글쓰기에 몰두했다. 그러니 운동시간이 꽤 부족했던 모양이다. 이미 그 며칠 전부터 가끔 목이 아프고, 눈도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말하자면 일종의 경고신호를 보낸 것인데, 미련하게 그걸 그냥 무시했다.

 

나는 체력적으로는 80대를 막 넘겼지만, 정신만은 50대를 유지한다고 자신해 왔던 터라 이렇게 내 몸이 어느 날 갑자기 기습적으로 반란을 일으키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그때 내 생각은 이러다가 불구가 되면 어쩌지? 큰 병원을 찾아가도 나이가 많다고 수술도 해주지 않을 테고 이대로 여생을 고통 속에서 지낸다면 자식들에게 괜히 부담만 안겨주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앞섰다.

 

그런 중에 친구로부터 안부 전화가 왔다. 첫 마디가 건강하냐고 묻는다. 그래서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더니 "그냥 밖에 나가 걸어 봐”하고 싱겁게 웃어넘긴다. 그리고는 옛날 말에 드러누우면 죽고, 일어나 걸으면 산다는 말이 있다면서 “친구야, 기도 많이 하잖아, 기도해서 안 되는 게 없다면서 뭘 걱정해, 기도해봐, 걸으면서 기도하면 될 거야" 하고는 전화를 끊는다. 친구의 충고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그날 이후 거의 1주일 정도 사무실에도 못 나가고 공원길을 하루 30분 이상 기도하면서 걸었다. 그러나 반듯하게 속도감 있게 걷는다는 게 내 형편으로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힘들면 가다가 쉬는 한이 있어도 꾸준히 걸었다. 며칠 뒤 허리 펴기가 신기하게도 예전으로 돌아왔다. 이게 은혜구나 생각했다. 걷는 시간은 봄철인데도 날씨가 추워서 예전처럼 아침 6시쯤부터 걷지 못하고 한낮이 되어 햇볕을 받으며 걸었다. 걷기운동을 같이 하던 동네 노인들도 만났다.

 

매일 아침 걷기운동을 함께 했던 한 분이 얼마 전에 뇌경색으로 병원에 입원했다고 전해 들었다. 젊어서 기업을 운영해 돈도 많은 분이다. 그분은 8순 중반인데 헬스장도 가고 이따금 골프장도 출입하는 건강한 분이었다. 그러던 분이 갑자기 뇌경색으로 수술받고 병상에 누워 있으니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며칠 뒤 주말에 동네 노인들과 문병 차 그분 병실로 가봤다. 정신은 있는데 말이 이어지지 않았다. 평소에 나라 걱정도 많이 하고 마을의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에도 앞장서곤 하던 분이다. 그런 모습들을 회고하면서 쾌유를 위한 간절한 기도를 드린 뒤 돌아서려니 그분은 병문안에 고맙다는 눈빛으로 바라만 보았다. 나도 모르게 괜히 서글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실을 나와 집으로 오면서 그분이 지금 가장 원하는 것이 무얼까? 하고 생각해봤다. 그렇다. 그분은 아마 예전처럼 동네 친구들과 걷기운동도 같이 하고 나라 걱정도 하면서 즐겁게 살고 싶다는 아주 소박하면서도 사소한 일상생활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상생활이 '하늘의 기적'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시간은 너무 늦는다는 점이 안타깝기만 했다.

 

사람들은 밥 먹고 잠자고, 일하고, 이웃의 애경사를 찾아가는 그 흔한 일이 '하늘의 기적'이라 것을 모른다. 아니 어쩌면 그게 당연한 일인 것처럼 느껴져서 감사할 줄을 모르는 것 같다. 그러다가 큰일이 닥치면 그때야 자신의 미련했던 삶을 후회한다.

 

내 허리 통증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한 주일 만에 완전히 사라졌다. 사무실에 나가고, 교회에 가고, 친구를 만나는 데도 아무런 지장이 없다. 이 모두가 신의 가호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지금에 와서 실토하지만 나는 늘 입으로만 감사함을 되뇌면서 진정으로 느껴보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 때문에 이번에 감사한 일이 무엇이고 내 주변에도 이와 같은 감사할 일들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감사할 줄 모르면 기쁨이 없다. 기쁨이 없으면 불행하다. 자그만 일에도 감사할 줄 안다면 그 사람은 언제나 행복할 것이다. 우리 주변을 돌아보자. 감사할 일이 너무나 많다. 감사가 지속되면 될수록 행복의 크기는 따라서 점점 커진다. 나부터라도 숨 쉴 때마다 감사 거리를 찾아 감사하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겨야겠다. 먼저 이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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