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산일보

한국궁사들 파리올림픽서 백발백중, 세계가 경탄

이서인 기자 | 기사입력 2024/08/09 [14:54]

한국궁사들 파리올림픽서 백발백중, 세계가 경탄

이서인 기자 | 입력 : 2024/08/09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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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한준 <필자 : 조선일보 정년,시인, 저술가 대한언론인회 부회장> 

파리올림픽 양궁 전 종목을 석권한 한국 남녀궁사들의 백발백중 뉴스는 극한폭염의 청량제였다. 한국은 2024 파리올림픽의 양궁 전 종목을 석권, 코리아의 위상을 세계만방에 떨치며 국위를 선양하였다. 올림픽 사상 첫 5종목 석권의 쾌거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경이로운 대기록이다. 장쾌한 진기록에 세계가 찬사를 보내며 경탄했다.

 

한국 양궁 궁사들은 이번 올림픽에 걸려있는 5개의 금메달을 모두 따냈다. 여자 단체전 10연패로 산뜻한 출발을 한 뒤 남자 단체전, 혼성 단체전 금메달을 연속 차지했다. 김우진(청주시청)과 임시현(한국체대)은 올림픽 3관왕에 오르는 영광을 누렸다. 2020 도쿄올림픽에서 혼성 단체전이 처음 도입되면서 5종목으로 늘어난 뒤 한국이 양궁 전 종목을 석권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도쿄에선 남자 개인전을 제외한 종목에서 금메달 4개를 따냈다.

 

한국 양궁은 대표 선발전부터 공정하기로 정평이 났다. 그 전의 경력이나 기록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선발된 선수들이 대회에 보다 빨리 적응할 수 있도록 대한양궁협회도 최선의 지원을 퍼부었다. 파리올림픽 양궁경기장이 앵발리드 군사박물관 광장으로 정해지자, 대한양궁협회는 지난해 ‘정몽구배 양궁대회’를 파리의 전쟁기념관 광장과 비슷한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치렀다. 적응력을 키워준 배려였다. 센강 옆에 있는 경기장 특성을 고려해 남한강 근처에서 훈련을 하기도 했다. 실제 경기장과 똑같은 환경에 미리 적응하기 위해서였다.

 

현대자동차 그룹이 꾸준한 지원을 해준 덕도 크다. 정몽구 명예회장이 1985년에 대한양궁협회장에 취임한 이래, 정의선 회장 역시 2005년부터 16년째 계속 대표 팀을 후원하고 있다. 정의선 대한양궁협회 회장은 “모든 것들이 혼연일체 하나로 합쳐져서 된 쾌거이자, 큰 행운이고, 영광”이라면서, “다음 LA 올림픽에 대비하자”며 강조했다.

 

양궁은 전통 활쏘기인 국궁(國弓) 곧 궁도(弓道:궁술)와 구별하기 위해 붙여진 이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59년 수도여고 체육교사 석봉근이 젊은 층에도 확대해 보고자 양궁과 대나무화살을 구입, 남산 중턱에 있는 석호정(국궁 활터)에서 연습에 열중, 양궁의 싹이 텄다.

 

1963년 7월 국제양궁연맹(FITA)에 가입하고, 그해 9월 제11회 서울시 체육대회에 경기종목으로 채택되어 20m 경기를 펼쳤다. 1963년 10월 한국일보사 주최 제6회 전국 활쏘기대회 양궁 30m 종목이 경기도 수원화성 성터에서 실시되었다. 1967년 10월 제1회 전국남녀궁도대회, 1968년 9월 제49회 전국체육대회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어 중·고교에 팀 창설 붐이 일어났다.

 

한국 양궁은 1978년 방콕 제8회 아시아경기대회, 1979년 서베를린 제3회 세계양궁선수권대회, 1982년 제1회 아시아-오세아니아 선수권대회, 1982년 뉴델리 아시아경기대회, 1984년 제23회 LA올림픽 등을 휩쓸면서 최고의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한국 양궁은 1984년 LA올림픽에 참가한 이래로 금메달을 한 번도 놓치지 않았다. “한국 양궁이 왜 강한가?”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그 이유는 한마디로 “설명이 어렵다.” 다만 원칙과 정도를 철저하게 지키면서 강도 높은 훈련을 시행한다.

 

파리올림픽 ‘양궁 3관왕’ 김우진과의 슛오프 접전 끝에 4.9㎜ 차이로 석패한 미국의 브래디 엘리슨은 5회 연속 올림픽에 출전한 백전노장이다. 그가 김우진과 포옹하며 축하하는 모습에 찬사가 쏟아졌다. ‘미국의 양궁 전설’인 그에게 태극궁사의 DNA가 넘쳤는지 모른다. 그게 바로 ‘올림픽 정신, 스포츠 정신, 품격 있는 선수’라는 평가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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