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1월 20일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면 거친 파도가 밀려올 거라고 사람들은 걱정한다. 그가 1기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2기 임기 중 지금껏 공언했던 ‘위대한 미국’을 위한 정책들을 모두 달성하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미리부터 겁낼 필요는 없다. 잘 만 하면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도 있다.
1기 때의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운영은 몇 가지 특징으로 요약 된다. 우선 그는 외교 문제를 상거래 식으로 전개했다. 그리고 자신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으면 상대에게 불이익이 크다는 식으로 겁주며 거래하려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자아의식이 강해서인지 절대 손해 보는 거래는 하지 않으려 했다. 특히 우리가 당장 직면할 수 있는 방위비 분담금 인상이나, 무역수지 흑자와 같은 숫자는 무조건 미국 우선주의에 입각해서 미국한테 유리한 숫자로 바꾸려고 한다.
여기에 미국 전 정부에서 아무리 굳게 다져놓은 우방 간 경제. 안보정책이라 해도 미국에 불리하다고 생각되면 폐지하겠다고 공언 해왔다. 예컨대 미국 내에 외국기업이 짓는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공장에 보조금을 주어오고 있는 데 트럼프는 당선과 함께 폐지하겠다는 게 공약이었다. 삼성, SK하이닉스, LG에너지 솔루션 등 우리 기업들은 트럼프의 보조금 지급 폐지로 12조원에 달하는 보조금을 날리게 됐다.
그런데 이런 트럼프의 대외정책은 앞서 언급했듯이 그의 개인주의적이고 강한 자아의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판단된다. 그는 자기가 좋아하는 리더와 그렇지 않은 리더를 구분하고 차별하기도 한다. 그래서 그는 “화이어”라는 단어를 잘 쓴다. 이 때문에 트럼프와의 소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화의 방식이다. 그의 주장에 반박하거나 모호한 답변을 하면 “화이어”당한다.
그와 대화를 할 때는 의견이 달라도 상거래의 관점에서 다른 대안을 제시하거나 아무리 어려운 문제라 해도 진솔하고 분명한 의사전달을 하는 게 중요하다. 아랫사람이 적어준 자료를 읽으면 안 된다. 그러면 실력이 없는 지도자라고 생각해서 완전히 무시한다. 우리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 트럼프와 대화 하는 중 페이퍼를 놓고 읽다가 망신당하는 모습을 TV화면을 통해 본 일도 있다.
트럼프는 상대편 지도자가 대등한 대화능력이 있고, 자기의 전략을 이해하고 협력할 수 있다는 점을 각인시켜 주기만 하면 가까운 친구로 여긴다. 역시 개성이 강하고 칭찬받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와 가까이 하려면 개인적 관계가 중요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재빠르게 트럼프 당선인에게 전화로 당선을 축하하고, 이른 시일 내에 회동하기로 합의한 것은 참 잘한 일이다.
다음 주 페루와 브라질을 순방하고 귀국 길에 트럼프의 본거지인 플로리다를 들렀다가 오는 것도 고려해봄직하다. 트럼프 당선인은 자신을 먼저 찾는 외국 정상이 자신을 좋아한다고 인식할 것이다. 지난해 4월 워싱턴에서 팝송을 부르며 보여준 윤 대통령의 친화력이 다시 발휘된다면 더 없이 좋을 것이다.
우리 앞에 놓인 한. 미간 현안은 많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트럼프 당선인으로서는 한반도 문제는 후순위에 해당한다. 우선순위로 보면 당면한 현안이 더 많다. 이를테면 우크라이나 종전이라든가, 중동문제 해결, 중국과의 전략 경쟁 등이 먼저 풀어야할 문제 들이다. 한. 미간 현안은 향후 주고받는 식으로 풀어가겠다는 이해를 함께하면 충분하다.
사실 주한미군 주둔비용 분담금 문제랄지, 혹시 모를 주한 미군 감축, 북핵 협상 및 한국의 안보 우려, 대미 무역 흑자 등은 우리의 부채 영역이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지원 문제랄지, 중국 관련 협력, 공급망 등 대미 경제 안보 기여, 대미 투자 등은 우리의 자산 영역에 해당한다. 따라서 개별 사안 하나를 고민할 게 아니라 더 큰 거래 즉, 빅딜(big- deal)을 구상하여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첨단과학기술시대의 경제적 번영을 실현하면 된다.
아베 전 일본 총리는 과거 트럼프가 당선되자마자 금으로 장식된 골프채 드라이버를 선물하고 트럼프를 극진히 대접한 일이 있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맥아더 장군의 환심을 사려고 맥아더 선친이 애지중지하던 조선 백자를 전쟁 중에 분실했다는 정보를 입수하자 조선 도공을 불러 모아 똑 같은 백자 두 벌을 만들어 진상했다는 일화도 있다.
윤 대통령이 트럼프와 그런 관계를 만든다면 김정은과의 위험한 거래나, 주한 미군 철수, 대(對) 한국 무역제재와 같은 일은 막을 수 있을지 모른다. 정부는 트럼프 2기 정부의 경제. 안보 정책 전반을 면밀히 파악하고 ‘이익을 주고받는’ 트럼프 식 거래 외교를 역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유능한 서핑선수는 파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 파도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역량이 있기 때문이다. 유능한 서핑선수처럼 파도를 잘 탈 수만 있다면 트럼프 2기의 위기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 <저작권자 ⓒ 오산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칼럼#장석영 관련기사목록
|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