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에서 유일하게 공중전화 박스가 설치되어 있는 곳은 교회 옆 영아원 입구 도로변이다. 나는 오늘도 주일을 맞아 3부 주일 예배를 드리려고 집에서 나와 걸어서 교회로 향하고 있었다. 영아원에 가까이 갔을 때 무심코 공중전화기를 처다 봤다. 그리고 왠지 공중전화기가 반갑게 맞이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렇지, 아내의 휴대전화는 통화가 정지됐으니 저 공중전화기로 아내에게 안부 전화를 걸어봐야지” 나는 무턱대고 공중전화기로 다가가서 수화기를 들었다. 그리고 백 원짜리 동전 두 개를 넣었다. ‘삐’하고 신호음이 들렸다. “가만 있자. 그런데 천국의 전화번호가 몇 번이지?”
한동안 난감했다. 그런데 내 머리에 옛날 아내와 농담으로 나눴던 천국의 전화번호가 전광석화처럼 떠올랐다. “그래, 그 때 아내가 혹시 자기가 먼저 천국에 가면 1000국에 1004번으로 전화를 걸면 통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지.” 나는 1000번을 누르고 다시 1004번을 눌렀다. 혹시나 하고 잔뜩 긴장해서 기다리고 있는데 역시나 신호가 가고 있었다.
수화기 저 쪽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 여보세요. 천국의 천사님들의 집입니다. 저는 여기서 전화 받는 사람인데요. 누구를 찾으시지요?” 너무나 사람의 전화소리와 똑 같아서 깜짝 놀랐다. 나는 허겁지겁 대답했다. “네, 김계호 권사님을 찾는데요.” “ 아, 네, 김계호 천사님 말씀이시지요? 권사님은 여기서 천사님이라고 부른답니다. 곧 바꿔드릴 께요.” 멀리서 들린다.“김계호 천사님 전화 받으세요”
잠시 뒤에 아내의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들려왔다. “전화 바꿨습니다. 누구세요” 처음엔 말문이 막혀 말이 나오질 않았다. 한 참 뜸을 드리고 답을 하려니 아내가 다시 누구시냐고 묻는다. 그러면서 혼자 말로 ‘잘못 걸려온 전화인가’ 하면서 전화를 끊으려는 것 같았다. 그 때서야 나는 막혔던 말문이 열렸다. 그래도 내 말은 더듬거렸다.
”여보, 나, 나야, 당, 당신 남편.“ ”당신 이셨군요. 아니, 어떻게 전번을 알고 전화를 하셨어요? 별일 없으시지요? 대상포진은 좀 어떠세요? 아이들도 다 잘 있고요? 당신, 참, 내가 여기로 오기 전에 간병하느라 너무나 고생 많으셨어요. 고마워요, 여보.“ 아내는 내가 말할 틈도 주지 않고 마치 속사포 같이 말을 쏟아냈다.
내가 건성건성 대답하고 나니 지금 아침 예배시간이라 다시 들어가야 한다면서 나중에 다시 전화하라며 전화를 끊으려 한다. 나는 며칠 전에 보낸 편지는 받아봤느냐고 물었더니 받아봤다면서 모두 잘 처리 하신 것 같다면서 다음 주일에 또 전화하라면서 전화를 끊는다. “뚜우~ 뚜우~”
수화기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낙망해서 힘없이 수화기를 걸어놓다가 그만 떨어뜨렸다. 수화기가 전화박스 벽면을 한 번 부딪고 나서 나는 가까스로 수화기를 집어 걸어놓았다. 그 바람에 잠에서 깼다. 일장춘몽이란 말이 여기에 해당하는지 모르겠으나 허전하기 이를 데 없는 순간이었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아내가 다음 주일에 또 통화하자고 했으니 말이다. 어디 그뿐인가. 아내가 천국의 천사님들의 집에서 살고 있다니 이처럼 반갑고 기분 좋은 소식이 또 어디 있다는 말인가.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기는 했지만 꿈속에서라도 아내와 즐겁게 전화통화를 했다니 정말 “꿈만 같았다” 그래서 다음 주일이 어서 오길 더 기다려진다. <저작권자 ⓒ 오산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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