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9일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야당이 김건희 여사 관련 특검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 거부의 뜻을 밝히면서 “지난 정부에서 특수부까지 동원해 저를 타깃으로 치열하게 수사했는데도 또 하자는 것은 정치공세일 뿐"이라고 했다.
이에 야당은 "이번에 대통령이 특검 수용을 거부하면 22대 국회 개원 즉시 김 여사 특검법을 다시 발의 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자 이원석 검찰총장은 송경호 서울중앙지검장에게 김 여사 관련 의혹에 대한 전담수사팀을 구성하고, 신속하고 철저히 수사하라고 지시했다.
이런 와중에 법무부는 지난 13일 검사장급 39명에 대한 인사를 전격 단행했다. 김건희 여사의 명품가방 수수의혹과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수사를 지휘하던 송 지검장을 비롯해 김 여사 관련 수사실무를 맡았던 차장 검사들도 모두 교체됐다. 김 여사 관련 의혹에 대한 본격 수사에 들어간 지휘라인을 다 바꾼 것이다.
검사장급 인사는 보통 1월 말이나 2월초쯤 이뤄진다. 지금은 그 시기도 지났고, 특별히 인사 필요성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박성재 법무장관은 지난 2월 취임 직후 "인사에 신경 쓸 때가 아니다"라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원석 검찰총장도 오는 9월이면 2년 임기가 끝나는 만큼 그 이후에 해도 늦지 않다. 그런데 왜 김여사 관련 수사 지휘라인을 모두 교체한 것일까?
송 지검장은 원래 '윤석열 라인'이었지만, 올해 초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과 관련해 김 여사 조사 필요성을 주장하다 대통령실과 갈등을 빚었다는 얘기가 파다했다. 그래서 송 지검장을 교체하려 했지만 이원석 검찰총장이 반대해 무산됐다는 것이다. 사실 여부는 확인되지 않은 의혹에 불과했다. 그런데 이번에 송 지검장을 전격 교체함으로써 사실일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
송 지검장 후임인 이창수 전주지검장은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 시절 대검찰청 대변인을 맡았다. 당시 추미애 법무장관이 총장 징계를 밀어 붙이자 '윤총장의 입'으로 활약하면서 신임을 얻었다.
수원지검 성남지청장 재직때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연류된 성남 FC후원금 의혹사건을 수사했고, 전주지검장 시절엔 문재인 전 대통령 전 사위가 연루된 채용비리 의혹사건에 속도를 내왔다. 이런 연유로 윤 대통령이 누구보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을 김 여사 관련 수사 책임자로 앉힌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가능하다.
인사 시점도 배경에 대한 궁금증을 더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김주현 민정 수석을 임명한지 엿새 만에 검찰 수뇌부 인사가 단행됐던 것이다. 윤 대통령은 민정수석실을 부활시킨 것에 대해 "민심을 더 깊이 듣기 위해"서라고 밝혔지만, 결국 사정기관을 장악하고, 김건희 여사 관련 사법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해가 아니냐는 의혹이 더 커지게 된 것이다.
또한 유튜브 방송과 짜고 명품가방 전달 장면을 몰카로 찍었던 최재영 목사가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고 있고, 조만간 김여사도 소환할 가능성이 제기되던 시점이었다. 이번 인사는 그래서 김여사 수사 방탄용 인사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던 것이다.
이원석 검찰총장은 자신의 참모에 대한 전격적인 물갈이 인사안이 발표될 때 지방 순회 중이었다. 자신의 참모가 대거 바뀌는데 그런 일정을 갖는 것부터가 심상치 않은 것이다. 이 총장은 이번 인사에 대해 총장의 뜻과 다른게 있느냐는 질문에 7초간 침묵하며 "더 말씀드리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인사는 인사, 수사는 수사"라며 "어느 검사장이 와도 증거와 법리에 따라 원칙대로 수사할 것"이라고 말하는 등 우회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고 한다.
특히 이번 인사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 권력비리 수사를 막기 위해 수사라인을 좌천 시킨 것과 유사하다. 당시 문재인 정부는 울산시장 선거개입사건, 조국일가족 비리 사건, 유재수 감찰 무마 사건 등의 수사를 지휘하던 한동훈 대검 반부재 강력 부장과 박찬호 공공수사부장을 부산고검차장, 제주지검장으로 각각 좌천 시키는 등 수사방해를 했었다. 이번 인사에서는 송 서울중앙지검장을 부산고검장으로 보내고 1,2,3,4차장 전원을 교체하는 등 이 총장을 허수아비로 만들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승진 형식의 좌천 구도도 꼭 닮았다.
이창수 신임 서울중앙지검장은 윤석열 총장 때 대검 대변인으로 추미애 법무장관의 윤 총장 찍어 내기에 맞섰던 인물이어서 문 대통령이 경희대 후배 이성윤 서울 중앙지검장을 임명했던 것과도 유사하다. 문 대통령과 추 장관을 강력히 비난하더니 그대로 따라 한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여하튼 이번 김 여사 의혹사건 수사 담당 검사장과 차장들을 한꺼번에 이동시킨 것은 그 의도를 둘러싼 여러 가지 해석과 추측이 나올 수 밖에 없다. 특히 법무부 검찰국장 등을 지내 검찰 인사에 밝은 김 수석이 오자마자 고위급 검사 인사가 대규모로 이뤄진 것을 두고 우연의 일치라고 볼 수는 없다. 윤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됐다고 보는 게 상식적인 것이다.
한편 이번 검찰인사는 '김여사를 수사하려면 야권의 의혹도 제대로 수사 하라'는 메시지가 담겨있다고 볼 수 있다. 검찰이 현 정부 출범 후 2년 넘게 사정(司正)에서 특별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따라서 검찰은 야권수사도 확대할 전망이다. 예컨대 지금처럼 '돈봉투 의혹' 조사에 계속 불응할 경우, 바로 기소하고 대북 송금 수사 등 이재명, 김혜경 수사도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이번 총선에서 확인된 민심 중 하나는 김 여사를 둘러싼 그간의 의혹에 대해서 공정하고 투명한 수사와 처분을 바라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야당이 김여사 의혹사건을 특검하자는 것도 정치 공세일 뿐이라는 윤대통령의 말을 국민들이 믿게 하려면 새 수사 팀이 공정한 수사를 하는 수밖에 없다. 그게 민심에 부응한 첩경이다. <저작권자 ⓒ 오산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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