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를 부칠 곳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것도 우리 나이 또래에선 더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나는 아직도 행복한 사람인 것이 맞나 봅니다. 왜냐하면 지금 당신에게 이렇게 그간의 일상을 일일이 편지에 담아 보낼 수 있기에 하는 말입니다.
엊그제부터 서울엔 가을비가 내리더니 바람이 차지고 초겨울 날씨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당신이 계신 곳도 마찬가지겠지요? 아니 그곳은 산 속이라 여기 보다 더 추울 것 같군요. 나는 집에 있거나 차를 타거나 사무실에 나가거나 따뜻하게 지내고 있지만, 당신은 그렇지 못하니 속이 많이 상합니다.
가을이라서 그런지 우리 동네 아파트 단지 내 나무들도 울긋불긋 단풍이 들기 시작합니다. 당신은 여기보다 더 넓은 정원수들을 바라볼 수 있으니 단풍 든 모습은 더 많이 볼 수 있겠네요. 아무리 단풍이 아름답다 해도 당신 없는 이 세상 단풍은 나에겐 아무런 감흥이 없답니다.
당신이 그렇게도 사랑하던 손자 손녀는 다들 중간고사를 본다며 바빠해서 며칠씩이나 코빼기도 볼 수 없답니다. 윤정이는 학교시험을 보자마자 언론사 입사를 위해 시험 준비를 해야 한다며 무척 바쁘게 돌아가고 있고, 윤준이는 곧 고교 지원을 하면 대학 입시를 대비한 ‘3년 전쟁’ 준비를 해야 한다며 심각한 표정을 짓곤 합니다.
어제는 용인에서 권 이장님이 멥쌀 한 가마와 찹쌀 반 가마를 보내왔습니다. 올해는 쌀값이 작년보다 더 떨어졌다고 엄살(?)을 부리시며 나머지는 현 시세대로 현금으로 부치겠다고 해요. 그러라고 했어요. 전 같으면 당신과 내가 현금은 반씩 나눠 가졌는데 아들에게 말했더니 아버지가 가지고 계시라고 합니다.
아들은 회사 일도 바쁜데 상속처리 문제로 굉장히 바쁘고 힘들다고 합니다. 내가 그랬어요. 세상 이치가 ‘바로 가기가 힘들수록 돌아가라‘고요. 그렇게 하겠다고 했어요. 내달 초에는 관계 공무원들과 미국 출장을 가는데 지난번처럼 그곳에 가서 영어로 설명회를 주관해야하는 모양입니다.
안산 건물은 부동산에 매매의뢰를 했고, 엘리베이터 교체는 내가 1년간 연기시켜놨어요. 그동안에 적당한 금액을 제시하고 사겠다는 사람이 나서면 팔아서 아이들한테 나눠주려고 합니다. 아들은 당신 생전에 이야기 했던 대로 윤준이 방학이 시작되면 미국에 데리고 가서 자신이 다니던 대학 등을 보여주고 오겠다고 합니다.
딸네도 모두 평안합니다. 지난번에 딸네와 같이 당신 보러갔을 때 비석에 넣을 문구가 당신이 평소 원하던 성경구절인 시편23편 6절 말씀이라고 보고한 바 있었지요?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 하리로다”였지요. 그걸 새겨 넣기로 했어요.
윤준이는 생각이 깊은 녀석 같아요. 내가 아들에게 당신 사진을 식당 벽에 걸린 내 초상화 옆에 달게 했더니 학교에서 집에 오면 거의 매번 당신 사진을 바라보고는 “할머니, 학교 다녀왔습니다.”하고 꾸벅 절하곤 한답니다. 녀석이 보통 아이들과 다른 긴 많이 다른 것 같아요.
나는 당신 보내 드리고 나서 회사 사람 120명을 모시고 정약용 선생 사저가 있는 남양주로 가을세미나를 다녀왔고, 삼강문학 식구 30명과는 황순원 문학관이 있는 소나기 마을로 문학탐방도 다녀왔습니다. 회장이라는 직책이 참 무섭더군요. 몸도 마음도 지쳐 있을 때여서 힘들었지만, 당신이 도와줘서 무사히 행사를 마쳤답니다.
정약용 생가는 당신과도 두 번이나 같이 가 본 곳이고, 소나기 마을은 세미원에서 조금 시내 변두리 쪽으로 약간 들어간 곳인데 몇 해 전 당신과 양평에 냉면 먹으러 갔다 오면서 다음번엔 꼭 한 번 가보자고 했지만 못 가본 곳입니다. 그래서 그곳에서 문학관을 둘러보면서 당신 생각이 더 나더군요.
황순원 작가는 원래 동작구에 살았는데 소설에 이곳에서 소년 소녀가 소나기를 맞다가 수수대로 만든 가림집에 들어가 소나기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는 이야기가 딱 한 줄 나와요. 이것을 인용해 양평군에서 재빨리 문화관광지로 조성했다고 해요. 그날도 서울과 경기 도내 초등학생들이 줄을 이어 오고 있었어요.
엊그제는 회사 만보회에서 회원 30여 명이 덕수궁 궁내와 돌담길을 걷는 행사가 있었어요. 우리 부부가 약혼식을 끝내고 그곳에 들러 사진을 찍던 추억이며, 언젠가 당신이 D일보에 근무하던 친구를 만나고 회사로 전화해 내가 대한문 앞으로 달려가 낙엽이 지기 시작하는 덕수궁 돌담길을 함께 걸었던 기억도 새록새록 났어요.
오늘 저녁엔 안방에서 잠자려다 그만 혼자 울었어요. 얼마까지만 해도 당신이 사용하던 침대와 휠체어를 대여 업체에서 회수가 갔어요. 그렇잖아도 허전한데 방이 텅 비어있으니 당신 숨결을 아주 잃은 것 같아서 그랬나 봅니다. 근래는 아무리 늦게 자도 꼭두새벽에 일어나서는 잠이 들지 않아 애를 먹곤 한답니다.
어떤 때는 당신이 옆에서 자고 있는 줄 알고 종전처럼 “여보, 괜찮아?” 하고 헛소리를 하기도 해요. 이웃들은 날 보고 “이제 당신을 그만 놓아주어야 당신이 하늘나라에서 편안히 지낸다.”며 내 건강도 챙기라고 성화입니다. 그럴 때마다 “고맙습니다.” 라고 말하지만, 마음속으로는 “그게 그리 쉽게 되는 게 아니라”고 말하지요.
당신을 사랑하지만 내가 잘못한 것도 많았기에 나는 지난 번 삼강문학 시 낭송에서 당초 준비했던 ‘혼자 있다는 것’이란 시 대신 최근 작품인 ‘위대한 고백’이라는 시를 낭송했답니다. 여기 적어 볼께요.
나는 잃었네/ 동산에 핀 할미꽃/ 지나치다가 그만 잃었네// 동산에 오를 때면/ 늘 마주치던 /그 꽃/ 구름을 머리에 이고/ 바람을 허리에 감고 있던/ 그 꽃// 병들어 가도/ 숙명인양 치부하고/ 긴장하거나/치열하게 고민하지 않다가/ 그만 잃었네// 다시 필 수 없는/ 그 꽃/ 홀로 있어도 / 동산가득 하던 / 그 꽃// <저작권자 ⓒ 오산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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