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민주당이 채상병 특검법을 단독으로 처리한 것은 진상규명보다는 다른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불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미 공수처와 경찰이 본격적으로 수사 중인 사건인데다가 아직 수사가 미진하다는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아시다시피 특검은 수사기관의 수사가 미진할 때 하는 것이다. 또한 공수처는 민주당이 주도해 만든 기관이다. 민주당은 공수처 수사를 지켜보고 미진하면 그때 가서 특검법을 처리해도 늦지 않다. 그런데도 무조건 특검부터 밀어 붙인 것은 사건의 진상이 아니라 정쟁이 목표로 보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작년 7월 집중호우 실종자 수색 과정에서 채상병이 구명조끼를 착용하지 않은 채 현장에 투입돼 순직한 사건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현장 투입 과정에서 잘못이 있었는지, 사건조사에 문제는 없었는지, 당연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수사기관의 수사가 미진한지 여부도 드러나지 않은 상태에서 특검을 밀어붙인 것은 그 자체가 잘못인 것이다.
특검법에 대통령실을 수사 대상에 포함시킨 것도 정치적 의도가 다분히 있다는 해석이 나올 수 밖에 없다. 정지권에서는 민주당이 "윤 대통령도 수사대상에 포함된다"고 벼르고 있는다는 말이 나돌고 있다. "채 상병의 안타까운 죽음을 이용해서 정치적인 목적으로 악용하려는 나쁜정치"라는 대통령실의 주장이 나오게 된 연유인 것이다.
물론 이 특검법은 정부가 자초한 측면도 적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젊은 병사의 죽음과 관련한 민감한 사안인데도 해병대 수사단의 기초수사 결과와 경찰 이첩 과정에 관여해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는 것이다. 더욱이 여기에 항의하는 수사단장을 항명 등 혐의를 적용해 기소했다. 그 핵심 대상이던 이종섭 전 국방부장관을 주호주 대사로 임명해 도피성 출국 의혹마저 샀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특검 추천권을 민주당이 갖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특검은 주로 여야가 함께 추천하거나 대한변협등 제3자가 하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지 않고 민주당이 특검을 지명하면 불공정 시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지금까지 특검법이 13차례 도입했지만, 여야 합의 없이 이루어진 사례는 단 한 차례도 없다.
특검이 수사 과정에서 수시로 언론 브리핑을 할 수 있게 한것도 잘못이다. 피의 사실 공표와 정치적 악용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부적절한 것이다. 민주당은 최순실 사건 때도 당시 특검법에 '수시로 언론브리핑을 할 수 있게 한 예가 있다'며 채 상병 특검법에서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고 주장한다. 하지만 정치적 악용 우려가 다분하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민주당은 192석의 범야권 공조를 토대로 '방송3법', '노란봉투법' 등 정부여당이 반대하는 법안을 21대 국회에서 처리하겠다는 방침이다. 또 22대 국회가 열리면 '김건희 특검법'을 바로 발의하겠다고 벼르는 모양이다. 조국혁신당이 1호 법안으로 공약한 '한동훈 특검법'에 대해서도 큰 틀에서는 합의가 이뤄질 것 같다.
21대 막판까지 힘자랑으로 몰아붙이고 있는 야당의 입법 독주는 우리 정치를 더욱 살벌하게 만들고 있다. 더욱이 여야합의로 이태원 특별법을 처리한 후 이뤄진 야당의 채 상병 특검법 단독처리는 유감스럽다.
하지만 이런 상황전개는 이미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첫 차담 형식의 회담 때 예견됐던 일이다. 이 대표는 이날 모두 발언 15분동안 '민생의 복지연금 수용', '이태원 특별법 및 채상병 특검법 수용', '가족 등 주변인사들의 의혹 정리' 등을 윤 대통령에게 강력하게 요구했다. 이 대표는 회담을 시작하기도 전에 점령군처럼 작심 발언을 쏟아냈던 것이다. 결국 이 대표는 '나는 대통령에게 할 말을 다하고 나왔다'는 이미지를 지지자들에게 남기는 이득을 봤다.
이 대표는 이날 또 "거부권 행사에 대한 유감 표명"을 요구했다. 그렇지만 야당이 국회에서 거대 의석을 무기로 각종 법안을 단독처리한 입법권 남용은 괜찮은지 묻고싶다. 자신들은 협조하지 않으면서 대통령에게만 거부권을 행사하지 말라고 하는 것부터가 이기적 처사다. 이처럼 상대를 배려하지 않으면서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협치는 허구에 불과한 것이다.
이 대표는 "대통령께서 국회를 존중하고 야당을 국정의 파트너로 인정 해 주시면 좋겠다"고도 했다. 그렇다면 민주당은 지난 대선 이후 패배를 인정하고 윤 정부를 존중한 적이 있는가. 차담 때 윤 대통령은 이 대표가 '이기적이고 비열한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어야했다.
원래 협치는 권력을 가진 사람이 이타적으로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하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회담을 하기 전에 "경청해야겠다", "이제 정치를 하겠다"고도 했다. 소상공인 지원과 서민금융 확대와 관련해서 "정부의 추진 정책을 먼저 시행하고 필요한 경우 야당이 제기한 부분에 여야가 합의하면서 시행여부를 논의하자" 고 했다. 이것이 바로 민생 협치의 시작이다.
그런데 이 대표는 협치를 깨고 말았다. 아니 뒤통수를 쳤다고 보는게 맞을 것 같다. 그렇다면 앞으로 尹·李회담이 지속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무엇보다도 '자제와 상호 존중'의 자세가 중요하다. 그래서 두 수뇌가 반복적인 만남을 통해 상호신뢰를 구축해 나가야한다. 서로 다른 부분을 인정하면서 민생과 국정의 주요 현안을 지혜롭게 풀어 나가는 '진정한 전략'이 필요한 것이다. 이 대표처럼 상대를 배려하지 않으면서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협치는 불가능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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