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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에서 잊혀지나 페리 의거 유적지:오산일보

오산일보

조국에서 잊혀지나 페리 의거 유적지

김정수 | 기사입력 2024/03/29 [11:16]

조국에서 잊혀지나 페리 의거 유적지

김정수 | 입력 : 2024/03/29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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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의식 전)서울신문사부국장현)대한언론인회 편집위원  

미국 서부에서 거주하는 지인이 소식 하나를 전해왔다, 샌프란시스코 한인회가 지난 몇 년간 코로나 사태로 중단했던 ‘전명운 장인환 의사 페리 의거 기념식’ 행사를 다시 준비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올해로 106주년이 되는 이 행사는 지난 2006년 샌프란시스코와 인근 지역에 거주하는 동포들이 처음 시작한 이래 매년 3월 23일이 되면 한인회관 강당에서 100여 명의 교민이 모여 두 의사를 추모하면서 미국에서 성장하는 후손들에게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선열들의 애국정신을 전해주는 자리로 진행해 왔다고 한다.

 

1908년 3월 23일 미국 샌프란시스코만에 있는 페리 부두 빌딩 앞에서 세계를 경악시킨 총격 사건이 일어났다. 그때 총을 맞은 사람은 대한제국의 외교 고문으로 녹봉을 받으면서도 일본의 조선 침략의 주구로 활동해온 친일 미국인 더함 스티븐스이고 그를 권총으로 처단한 청년들은 미국에 노동이민으로 건너와 샌프란시스코에서 지내던 전명운 장인환 두 의사였다.

 

본국 휴가차 일본에서 기선을 타고 샌프란시스코 항에 도착한 스티븐스는 현지 신문과 기자회견을 열고 “조선의 백성은 우매하여 독립할 자격이 없으므로 일본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라는 망언을 쏟아내 한인 동포들로부터 엄청난 항의를 받았지만 끝내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23일 아침, 워싱턴으로 가기 위해 페리 부두 빌딩 앞에 도착한 스티븐스는 미리 기다리고 있던 두 명의 한인 청년이 각각 발사한 총탄 세례를 받고 급히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수술후유증이 나타나 사흘 후 사망했다. 자국 외교관의 피습 사건을 샌프란시스코 지역신문은 물론 뉴욕타임스까지 대서특필하면서 미국은 물론, 조선 일본 중국 유럽 러시아에까지 사건 경위가 상세히 알려졌다.

 

처음 미국의 여론은 “샛노란 얼굴의 동양인 두 명이 감히 미국의 고위급 외교관을 습격했다”였으나 이후 “스티븐스를 앞세운 일본의 조선 침략에 항거하기 위해 두 애국 청년이 일으킨 독립전쟁 중 하나”로 인식되면서 장인환 의사는 ‘애국적 환상에 의한 2급 살인’으로 12년을 복역했고 전명운 의사는 ‘살인미수’로 기소되었으나 판사는 스티븐스 사망에 직접 관여하지 않았다며 구금 3개월 만에 보석으로 석방했다.

 

자유의 몸이 된 이후에도 두 의사는 미주지역에서 평생을 독립운동에 헌신하다가 광복된 조국 땅을 밟아보지도 못한 채 한 많은 독립운동가의 삶을 마감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지난 1962년 삼일절에 전명운 장인환 의사에게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고 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묘소가 마련되어 있다.

 

미국 태평양 연안의 샌프란시스코는 계절을 가리지 않고 세계 각국의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관광도시로 유명하다. 지금은 바다 건너 섬이나 인근 지역을 둘러보는 관광 여객선이 출항하는 페리 부두는 한국인 단체관광객들이 잠시라도 둘러보는 역사적인 장소로 의미가 깊다. 빌딩 건물 밖 광장에 관광객들이 도착하면, 한국인 가이드는 “바로 이곳에서 1908년 3월 23일 전명운 장인환 두 의사가 친일파 미국인 스티븐스를 권총으로 저격한 우리 독립운동의 역사적인 장소”라고 설명하면서 콘크리트 바닥을 소개한다.

 

하지만 바닥에는 아무런 흔적이 없다. 처음부터 아무것도 설치하지 않았으니 있을 리가 없다. 샌프란시스코 시청은 1898년에 건축된 이 페리 빌딩을 역사기념물로 지정하고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으나 두 의사와 상관없이 대표적인 건물인 까닭에 보존한다는 것이다.

 

개별적으로 이 도시를 찾아온 한국인들은 이곳이 바로 우리 역사 교과서에도 등장한 페리 부두라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다. 광복 후에 일본과 적대적이었던 중국, 우즈베키스탄, 러시아는 물론 심지어 일본 땅에도 독립운동 기념관 아니면 돌비석이라도 세워져 있으나 페리 부두 사건은 고위급 미국인이 한인에게 죽임을 당한 장소라서 그런지 현지 한인회는 물론 우리 정부 기관도 무심한 모양새다.

 

행사 재개 소식을 전해준 지인은 “샌프란시스코 도심지라서 기념관 건립은 어렵고 어울리지도 않는다. 다만 이 지점이 미주지역 독립운동의 발상지였음이 잊혀지지 않도록 국가보훈부와 샌프란시스코 영사관이 노력해 한글 몇 자라도 의거 현장 바닥에 표시되면 좋겠다”라고 안타까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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