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산일보

대형사건 ‘전부 무죄’는 예고된 참사

양호연 | 기사입력 2024/02/12 [07:14]

대형사건 ‘전부 무죄’는 예고된 참사

양호연 | 입력 : 2024/02/12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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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석영 회장 전)서울신문 사회부장,국장,본부장,논설위원, 명지대외래교수,행정학박사,한국문인협회 회원,한체대초빙교수,삼강문학회회장,pen클럽한국본부회원, 현)대한언론인회 회장 한국문학신문 대표     

검찰, 자성의 시간 절실

더 이상 ‘묻지마 항소’는 없어야

 

법원이 지난달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이어 지난 5일엔 이재용 삼성그룹 회장에게도 무죄를 선고하자 검찰은 두 사건 모두 항소로 맞섰다. 양 전 대법원장은 사법행정권 남용 관련 혐의 47개 모두가 인정되지 않았으며, 이 회장의 불법 승계 의혹 관련 혐의 19개도 하나같이 인정되지 않았다.

 

두 사건은 애당초 기소부터가 무리였다. 하지만 검찰은 정권의 논리대로 수사와 기소를 강행했다. 그 결과는 대참사였다. 그렇다면 검찰은 기소가 잘못되지는 않았는지 자성해 보는 게 순리다. 그럼에도 검찰은 두 사건 모두 1심판결에 불복해 항소장을 제출해 ‘묻지마 항소’라는 비판을 자초했다.

 

이 두 사건은 모두 문재인 정권의 적폐몰이와 맞물려 나라를 들썩거리게 했다. 결국 두 사건 중 한 사건은 한마디로 한국 대표기업의 경제활동 위축을 가져왔고, 다른 한 사건은 사법부의 황폐화를 초래했다. 그 결과 검찰은 애시 당초 무리한 수사와 기소를 밀어붙였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던 것이다. 이와 함께 이번에는 검찰의 기계적 항소에 대한 비판이 일고 있다.

 

검찰이 항소권을 남용한다는 인식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그래서 윤석열 대통령은 검찰총장이던 2018년 8월 “항소나 상고는 세밀하게 검토하고 가능성이 없다면 기소된 사람이 2,3심으로 내몰리지 않도록 잘 판단해 달라”고 당부했던 것이다. 이원석 검찰총장도 인사청문회 당시 이런 문제에 공감하면서 “기계적 항소를 지양하겠다.“고 밝힌바 있다.

 

따라서 검찰이 이번에 항소를 강행한 것은 적절치 않다고 본다. 나중에 대법원까지 가서 무죄가 확정되더라도 피고인에게는 수년간 재판을 계속 받아야 하는 것 자체가 고통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영미 법조계에서는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될 경우 검사가 항소하는 것을 제한하고 있다.

 

이 회장에 대한 수사의 경우를 들어보자. 문재인 검찰은 2018년 참여연대 등의 문제제기가 있자 곧바로 수사에 착수했다. 임직원 110명을 430차례나 소환 조사하는 등 전(全)방위 수사를 펼쳤다. 당시 대검수사심의위원회는 수사 중단과 불기소 권고까지 했다. 유죄 입증이 어렵다고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검찰은 이를 무시했다.

 

이 회장은 이 사건으로 5년 2개월에 걸쳐 수사와 재판을 받았고, 107차례의 공판 중 96차례나 법정에 출석했다. 이로 인해 이 회장의 글로벌 경영행보는 크게 제약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신(新)성장 동력확보에 필수적인 대형 M&A는 2016년 이후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앞으로 항소에 상고까지 간다면 최소 3년 이상 사법리스크가 이어질 전망이다.

 

경쟁사들은 이 회장이 재판에 발이 묶인 상황을 최대한 활용했다. 실재로 애플에 스마트 폰 시장 점유율을 잠식당했고, 대만의 반도체 ‘공룡’이라는 TSMC와의 격차는 더 벌어졌다. 이는 삼성이라는 특정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이다.

 

양 전 대법원장 기소 때도 핵심 혐의인 ‘사법행정권 남용’ 성립이 어렵다는 지적이 많았다. 대법원장이 다른 판사의 재판에 개입할 직권이 없기 때문에 직권남용이 성립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검찰은 기소했고, 무죄가 나자 일사천리로 항소했던 것이다.

 

법조계에서는 두 사건의 무죄선고가 바뀔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본다. 그러나 이번처럼 검찰은 1심에서 무죄가 나거나 형량이 구형량의 일정기준 이하로 나오면 일단 항소하고 본다. 이는 법원의 판단에 잘못이 있을지언정 검찰의 판단에는 잘못이 있을 수 없다는 오만한 사고의 반영이다.

 

우리나라 검사는 기소한 사건이 무죄가 나도 크게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 인사도 잦기 때문에 재판이 2년 이상 끌면 다른 자리로 가버려 책임소재도 불분명하다. 우리와 똑같이 검찰 항소권이 인정되는 독일이나 일본과의 차이다. 미국 등 보통법 국가나 유럽 대륙국가 중에도 프랑스 등에서는 피고인의 항소권은 있지만 검찰의 항소권은 아예 없다.

 

법체계가 달라 검찰의 항소권을 없애지는 못하더라도 적절하게 제한할 필요는 있다. 이번 두 사건처럼 검찰이 주장한 수많은 혐의 중 한 가지도 인정되지 않는 경우는 무리한 기소라고 판단해 항소권을 제한해야 한다. ‘의심스러울 경우 피고인에게 유리하게’라는 법언(法諺)이 있다.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하지는 못할망정 불리하게 해서야 되겠는가. 이번 두 사건을 계기로 무리한 기소도, 항소도 다시는 없게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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