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산일보

정치인은 얻었고 의사는 잃었다.

이서인 기자 | 기사입력 2024/01/15 [09:21]

정치인은 얻었고 의사는 잃었다.

이서인 기자 | 입력 : 2024/01/15 [09:21]

▲ 전의식 전)서울신문사 부국장
현)대한언론인회 편집위원

 

 

신년 초 발생한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가덕도 피습사건은 일주일이 지나면서 경찰과 검찰 고발 사건으로 비화했다. 서울시의사회 등 여러 지역 의사회가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119 헬기 이송에 대한 항의 성명을 발표한 데 이어 시민단체인 서민민생대책위원회가 민주당 정청래 최고위원,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이재명 대표의 응급 수술을 집도한 서울대병원 민승기 교수 등 3명이 직권남용, 명예훼손, 업무방해를 했다며 서울경찰청에 고발했고 청소년소아과 의사회는 같은 날 이재명 대표와 두 의원을 업무방해와 의료법 위반행위로 서울중앙지법에 고발장을 제출했다.

 

 

정치인 3인에 대한 업무방해 고발은 수사기관이 법대로 처리하겠지만 약 2시간에 걸쳐 이 대표의 목 부분 자상을 무사히 수술한 민 교수는 1월 4일 기자들 앞에서 수술 관련 발표문을 읽은 직후 부산대 병원, 나아가 우리나라 의료진의 명예를 폄하하고 실추시켰다는 혐의로 피고발인이 되었다.

 

민승기 교수는 발표문 중에 “속목정맥 혈관 재건술은 난이도가 높은 수술이다. 그래서 성공은 장담하기 어려운 상태였고 경험 많은 혈관외과 의사의 집도가 필요한 상황이라서 우리는 부산대 병원의 전원요청을 받아 수술을 진행했다”라고 설명했는데 바로 이 대목을 듣는 순간 불쑥 떠오른 기억이 소위 장돌뱅이로 불리는 보부상 조직의 엄격한 규율과 동지애였다.

 

 

보부상이란 조선조 시절 봇짐을 짊어지고 물건을 팔러 다니던 떠돌이 상인을 일컫는다. 개인이 객지로 장사를 나갈 때는 물건 도난과 폭력배 등 신변위험이 많아 집단으로 이동하면서 자연스럽게 동업자 조직이 생겨났다. 보부상은 서로를 동무라고 부르면서 강한 단결력을 앞세우며 신의를 강조했다. 지도자 명령엔 반드시 승복하고 설혹 범죄에 연루되어도 동무의 이름은 절대로 발설치 않는다는 규율도 있었고 동료 물건에 손을 대거나 거짓 비방을 하면 정해진 법도에 따라 가혹한 처벌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상민보다 못한 사회적 대우를 받았던 보부상도 금지했던, 동업 의료진을 불쾌하게 만드는 내용의 서울대병원 기자회견에 대해 부산대 초진의사와 병원 측은 “10여 명의 외상 전문의와 최신의 의료시설을 보유한 상급 권역외상센터인데, 환자가 중증의 상처를 입은 어려운 수술 대상자라 서울로 전원을 요청했다는 발언은 동료 의료인들을 모독하고 무시하는 행태”라는 항의를 내놓았다.

 

많은 의료인은 이 대표의 헬기 전원 이틀 후에야 수술 경과를 외부에 발표한 서울대병원이 정치 권력에 휘둘린 것 아니냐는 의심을 하면서도 오죽 난처했으면 그랬겠냐는 연민의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민 교수는 그동안 서울대병원에서 중증의 환자를 치료하면서 수련의들을 지도해온 명성 높은 의사였는데, 이번에 거물급 정치인 피습사건에 집도의로 등장하면서 자신의 의술을 과시하고 부산 의료인의 명예는 실추시켰다는 비난을 받게 됐으니 참으로 안타깝다.

 

서울대병원에서 봉합 수술을 받은 후 자택으로 퇴원한 이재명 대표는 자동으로 재판정 출석연기라는 여유를 얻었고 직권남용으로 고발된 정청래, 천준호 의원은 당 대표를 적극적으로 보필한 공로를 민주당에서 인정받게 됐다. 반면 수술을 집도한 민 교수는 얻은 것은 하나도 없고 잃은 것은 적지 않을 것이다.

 

 

그의 화려한 의술 인생에서 이번 기자회견 발언문 중 일부 대목은 평생 지워지지 않을 흠결로 남을 듯하다. “위험한 상태의 수술을 했다”라는 말과 “부산대의 전원요청을 받았다”만 삭제했어도 거물 정치인의 위기를 도운 명의로 기억될 텐데 결과가 정말 아쉽다. 그래서 이름과 얼굴이 알려진 유명인들은 한마디의 말도 조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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