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중국의 유력 관영매체들은 ‘70년 만에 애국 열사들의 신원이 확인됐다’라는 기사를 앞다투어 보도했다. 6.25 한국전쟁 때 북한의 우방으로 참전하여 행방불명 되었던 10명의 ‘재한중국인민지원군열사’의 유해가 지난해 7월 설립된 국가열사유해DNA감식실의 노력으로 주인의 이름이 밝혀졌다는 내용이었다.
중국군 유해 10구가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소재 ‘적군묘지’에서 본국으로 보내진 유해 362구 중 일부인지, 아니면 우리 국방부 산하 유해발굴감식단이 과거의 격전지에서 새로 찾아낸 유해인지는 모르겠으나, 반세기도 넘게 구천을 맴돌던 영혼들이 늦게나마 자신의 가족 품으로 돌아갔으니 인도주의 관점에선 다행한 일이다.
이 전사자들이 남북한 전쟁에 끼어든 것은 1950년도 늦가을. 그해 6월 25일에 3.8선을 넘어 남침한 북한 인민군이 소련에서 지원받은 전쟁 무기를 앞세워 남한 땅의 대부분을 파죽지세로 점령했으나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가 뒤집혔다. 10월 하순 국군과 유엔군이 평양을 거쳐 압록강까지 진군하자 김일성의 긴급요청을 받은 마오쩌둥이 대규모 군대를 참전시키면서 피아간에 엄청난 인명피해가 생겨났다.
거의 와해 상태가 된 북한군 대신 중공군 수십만 명이 압록강을 넘어 인해전술을 폈으나 UN군의 신무기 공격에 견디지 못하고 11만 명의 전사자를 냈다고 한다. 1953년 7월에 정전이 되자 휴전선 남쪽에는 북한군과 중공군이 버리고 철수한 무덤이 이곳저곳에서 발견됐다.
휴전 후 오랫동안 적대관계로 지내온 중국과 극적인 수교를 맺은 노태우 정부에 이어 김영삼 정부가 제네바협정 인도주의 조항에 의거, 세계 최초로 한국 영토 안에 중국과 북한군 전사자들을 집단으로 수용한 것이 바로 이 ‘적군묘지’였다.
문산으로 가는 37번 국도변 야산에 자리 잡은 묘지는 초창기엔 군부대 주둔지역이라 일반인 출입이 제한되어 존재 사실도 알려지지 않았으나 김대중 정부는 ‘적군묘지’ 명칭을 지우고 ‘북한군 ‧ 중국군 묘지’로 개명했다. 이후 이명박 정부는 이곳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이 늘어나자 5억 원의 혈세를 들여 묘역을 정비했고, 시진핑 정부와 해빙 무드에 돌입한 박근혜 정부는 중공군 유해 362구를 유족에게 돌려보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북한이 인민군 871구의 유해 송환을 묵묵부답으로 거부하자 이번에는 중국군은 삭제하고 ‘북한군 묘지’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문재인 정부 때는 경기도를 앞세워 국가 예산 135억 원으로 이곳을 ‘평화공원’으로 조성한다고 추진하다가 군부에서 강한 반대 움직임을 보이자 슬그머니 철회됐으니 참으로 기구한 운명이 아닐 수 없다.
대한민국 영토 안에 만들어진 2천 평 묘역에 북한군들이 집단으로 묻혀 있다는 사실, 그리고 청와대를 습격하려고 서울 도심에 숨어들었다가 국군에 사살당한 테러범들과 울진 삼척 바닷가로 침투했던 무장공비 등 비전사자 61구가 여기에 함께 있다는 사실을 아는 국민은 그리 많지 않다.
아직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모두 끝난 것이 아니다. 정전협정으로 일단 휴전상태를 유지할 뿐 언제 무력 충돌이 재개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현실이다. 학자들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민간인 희생자보다 한국전쟁에서 더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고 주장한다. 미국과 소련을 종주국으로 하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이념 대립이 불러온 폭력적 만행과 양 진영이 사용한 전쟁 무기의 파괴력이 엄청나게 발달한 것이 민간인 희생의 대표적 원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국민 중 일부는 남북 당국이 모두 외면하는 이곳을 마치 성역이나 되는 듯 인민군 추모행사를 열거나 심지어는 어린 학생들을 인솔하여 헌화와 묵념을 시키는 어른도 있다고 하니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 국군과 총부리를 맞댄 인민군 전사자를 위로하는 행사에 대해 당시의 참상을 기억하고 있는 국민은 “이게 정상적인 나라냐?”고 분통을 터뜨리니 산사람들의 성화에 죽은 자들이 편히 쉴 수나 있을지 참으로 걱정스럽다.
젊은 나이에 남침 전선에 끌려와 70여 년의 세월이 흘렀는데도 귀향을 못 하는 북한 동포들의 영혼을 모은 ‘적군묘지’가 소수 극렬 인사들로 인해 보수와 진보의 충돌을 부추기는 또 하나의 이념 전장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저작권자 ⓒ 오산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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