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3일은 봄이 오는 길목 입춘(立春)이다. 24절기 중의 하나로, 태양의 황경이 315˚에 드는 때이다. 예로부터 입춘이 되면 동풍이 불고, 얼음이 풀리며, 동면(冬眠)하던 벌레들이 깨어난다고 하였다. 입춘이라는 명칭은 중국의 화북 지방을 기준으로 한 것이라, 한국에선 이 때 기상이 매년 불규칙적이며, 1년 중 가장 추운 경우도 있다.
음력으로는 대개 설날과 정월대보름 사이인데, 조선시대 땐 새해 첫 절기인 입춘에 왕이 신하들에게 벽사(辟邪)와 기복(祈福)의 의미를 담은 그림을 하사하였다. 민간에선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 ‘국태민안(國泰民安) 개문만복래(開門萬福來)’ 등을 정성스럽게 써서 대문이나 대들보 등에 붙인다. ‘입춘대길 건양다경’은 ‘봄이 시작되니 크게 길하고 경사스러운 일이 많이 생기기를 기원’하는 뜻이다. ‘입춘대길’이라는 문구는 미수 허목이 지었고, ‘건양다경’은 우암 송시열이 만들었다고 전해온다.
좋은 글귀를 큰 글씨로 써서 대문이나 대들보 혹은 천장에 팔(八)자로 붙이는 입춘첩은 일반적으로 입춘날 입춘시간에 맞춰 붙이고 다음 절기인 우수 전날 떼어낸다. 농가에서는 보리뿌리를 뽑아 보고 그해 농사가 잘 될지 어떨지를 점치기도 하였다. 음력으로 한 해에 입춘이 두 번 들어 ‘쌍춘년(雙春年)’이라고 하여 그해에 결혼하면 좋다고 여겼다. 어떤 해는 입춘이 정월과 섣달에 거듭 들어 ‘재봉춘(再逢春)’이라 한다.
조선시대에는 예문관에서 입춘첩을 임금에게 바치기도 하고, 임금은 대제학을 불러 글을 짓게 하고 잘 지은 이들을 뽑아 ‘봄에 대한 예찬’과 ‘임금의 은덕· 오복 등을 찬양’하는 연상시(延祥詩)를 짓게 해서 그 가운데 합격한 것을 대궐의 문미(門楣)에 붙였다고 전한다. 민간에서는 글을 쓸 줄 아는 문인들이 입춘첩을 지어 이웃에게도 나누어 주었다. <동국세시기> 등에 소개된 입춘첩을 보면 평안, 풍년, 경축, 발복, 장수 등을 기원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입춘이 와도 계절은 여전이 추운 겨울이다. 다만 햇빛이 강해지고 밝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동지가 지난 이후 태양이 다시 북반구 쪽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입춘이 지난 뒤에도 한 달 정도 지나야 계절의 변화를 체감할 수 있다. 실제로는 춘분이 되어야 본격적인 봄이라고 여기지만, 3월 5일 경칩이 되어야 봄의 기운이 느낄 수 있다.
입춘 날엔 궁중에서는 겨자, 움파, 산갓, 승검초, 미나리, 무, 파, 마늘, 달래 등 강한 자극을 가진 나물 중 다섯 가지를 골라 오신반(五辛盤)을 만들어 임금님 수라상에 얹고, 민가에서는 눈 밑에 돋아난 햇나물을 뜯어다가 무쳐서 세생채(細生菜)를 만들어 먹었는데, 이를 입춘 절식이라 했다. 함경도에서는 명태순대를 만들어 먹었다고 한다.
우리 선대들은 계절의 변화를 보다 정확하게 알기 위해 절기를 만들어 사용했다. 절기를 통해 계절의 변화에 대비하며 농사일을 했고 날씨의 변화에 따라 생활정보를 얻었다. 절기에 따라서 낮과 밤의 길이를 알고, 사계절의 변화와 함께 계절마다 6절기가 있어 봄에는 입춘, 우수, 경칩, 춘분, 청명, 곡우, 여름에는 입하, 소만, 망종, 하지, 소서, 대서, 가을에는 입추, 처서, 백로, 추분, 한로, 상강, 겨울에는 입동, 소설, 대설, 동지, 소한, 대한에 슬기롭게 대응하면서 삶을 영위해왔다. 입춘절기엔 겨우내 웅크리고 있던 나목(裸木)마다 움이 돋고 새싹이 난다. 우리네 가슴에도 희망의 싹을 틔워 꽃도 피우면서 좋은 일이 가득하기를 기원하는 ‘입춘대길(立春大吉)ㆍ건양다경(建陽多慶)’의 을사년이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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