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선거 관리위원회와 전국 선거관리위원회가 지난 10년간 저지른 경력직 공무원 채용 비리와 규정 위반 사례를 보면 말문이 막히고 가슴이 벌렁거린다. 아니 국가기관이 썩어도 이렇게 폭삭 썩을 수 있단 말인가.
수호지(水湖志)에 나오는 말 가운데 마귀가 숨어있는 신전이란 이름의 복마전(卜馬殿)이라는게 있다. 흔히 나쁜 일이나 음모가 끊임없이 행해지고 있는 악의 근거지라는 말이다. 요즘은 부정부패 비리의 온상지를 보통 복마전이라고 한다. 바로 선관위가 이에 해당하지 않을까 한다.
감사원에 따르면 선관위는 4급 이상이 350명 정도인데, 10년간 전현직 49명이 291차례 진행한 경력직 공무원 채용에서 1200여건의 비리와 규정 위반을 했다고 한다. 감사원은 비리 직원 27명을 직권남용과 청탁금지법 위반, 국가 공무원법 위반 등 혐의로 검찰에 수사 요청하고, 다른 전현직 직원 22명의 비리 의혹자료도 검찰에 넘겼다고 밝혔다.
선관위 채용비리 내용은 상상을 초원한다. 장관급인 김세환 전 중앙 선관위 사무총장 아들의 경우 강화군 선관위에 빈자리가 없는 상태에서 '만들어진 자리'에 임용됐다. 그런데 김 전 사무총장 아들은 인천선관위 산하 강화군 선관위에서 5년이상 근무해야하고, 중간에 다른 선관위로 옮기지 못한다는 조건이 붙어야 하는데, 어쩐일인지 그에게는 '5년간 전보금지 조건'을 달지 못하게 했다는 것이다.
또 서류전형에서 당초 채용 계획에 없는 비공식 기준을 만들어 이 기준대로 합격자를 선발하게 했다. 김 전 사무총장 아들이 뽑힐 수 밖에 없게 설계돼 있는 맞춤형 기준이었던 것이다. 면접에선 김 전총장과 친분이 있는 직원들이 면접위원으로 들어와 김 전총장 아들에게 높은 점수를 줬다.
김 전총장 아들은 임용 1년도 안돼서 상급 기관인 인천 선관위로 옮길 수 있었고, 그에겐 규정상 근거도없이 관사까지 무료로 제공됐다. 그때 그는 선관위에서 '세자(世子)'로 불렸다고 한다. 선관위에서 '왕'이나 다름없는 사무총장의 아들이어서였다는 것이다.
김 전 총장의 후임인 박찬진 전 총장의 딸은 2022년 전남선관위에 채용하는 과정에서 점수를 조작했다. 외부에서 온 면접위원들에게 접수란을 비워두게 하고, 여기에 박 전총장의 딸을 포함해 미리 정해준'합격내정자' 6명에게 높은 점수를 적어넣게했다. 내정자에 포함되지 못한 4명은 당연히 불합격 처리됐다.
2018년 송봉섭 전 사무차장의 딸의 채용에는 아예 이 딸의 이름을 대상으로 하는 '비(非)다인 경쟁 채용'이라는 방식이 동원됐다. 또한 선관위 직원들은 상급자 자녀들의 인사상 이익을 위해서라면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지자체 고위간부에게 압력을 넣기도 했다.
국가공무원법에 따르면 지자체 소속 지방직 공무원을 선관위 소속 국가직 공무원으로 채용하려면 해당 지자체로부터 전출동의를 받아야 한다.예컨대 충북 청주시 상당구 선관위 4급 국장은 옥천군에서 8급으로 일하던 자녀가 충북선관위 채용에 응시하자 충북선관위와 옥천군 선관위 직원들에게 "옥천군으로부터 전출 동의서를 받아달라"고 청탁했다.
이에 옥천군 선관위 과장(5급)이 '선거협조'를 명목으로 옥천군수를 찾아가 전출 동의를 요구했다. 군수가 법적 이유로 거절 하자 이번에는 옥천 선관위 계장 (6급)이 군수를 찾아가 동의를 거듭 요구해 끝내 동의를 받아냈다. 군수는 감사위 조사에서 "다음 지방선거에 다시 출마해야하는 상황에서 선거 감독 기관인 선관위가 계속 압력을 하니 동의를 해줄 수 밖에 없었다"고 진술했다.
악덕과 타락을 상징하는 두 도시, 소돔과 고모라에서나 있을법한 일이 아닌가. 선관위가 '헌법상 독립기구'를 내세우며 설립 60여년 동안 단 한 번도 감사원의 직무 감찰을 거부한 까닭을 알것만 같다. 선관위는 이번 채용비리의 의혹이 불거졌을때도 자체 감사만을 고집했었다.
그리고 그 사이 조사가 진행중인 사무총장과 사무차장을 징계 전에 면직처리해 공직 채용이나 연금 수령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했다. 이렇게 감시 사각지대에서 자기들끼리 특혜를 주고 받으며 '신의 직장'을 만들었던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선거관리위원회 간부들이 감사원 감사를 앞두고 '특혜채용' 상황이 담긴 실무직원의 업무일지를 조작하는 등 조직적으로 증거인멸까지 시도했다는 사실이다. 2021년 1급인 신우용 당시 상임위원 아들의 채용에 관여한 서울 선관위 인사담당 B씨는 지난해 6월 감사를 앞두고 부하직원에게 채용 관련 문건이 담긴 서류함을 "갈아버려라"고 지시했다.
B씨등은 지난해 5월 선관위 자체 감사 당시엔 말을 맞춘 뒤 "블라인드 면접이었다"며 '특혜 채용'의혹 자체를 모두 부인했었다. 이러니 복무기강 이 설리가 없다. 선관위 사무국장은 병원에서 받은 진단서 1건으로 여러 차례 병가를 내는 방식으로 8년간 100일 넘게 병가를 내거나 무단결근했다. 무단결근하는 동안 그는 90차례 170일 넘게 해외여행을 다녔다. 한 도 선관위 직원은 재직 중에 법학전문대학원을 다니다가 적발되기도 했다.
어디 그뿐인가. 제 일도 제대로 할 리가 없다. 대선때 투표용지를 소쿠리에 담아 옮기고, 이미 기표한 용지를 유권자들에게 나눠줬다. 주요 선거가 다가오면 무더기로 휴직했다. 북한의 해킹 공격을 8차례나 받고도 알지 못했다. 그리고는 해킹 조사도 거부했다. 이처럼 선관위가 부정선거의 지령실이라는 의심을 받은지도 오래다. 차제에 선관위의 대수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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